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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0 당신의 일렁임과 대화하는 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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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아이리스>


어릴 때는 미술이 참 재미가 없었더랬습니다.

다음 중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아닌 것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특징을 가장 잘 짝지은 것은?


만날 이런 질문들을 맞추기 위해 달달 외워야 했으니 재미있었을 리가 있나요. 실기는 또 어땠을까요. 비슷비슷한 그림들을 반복적으로 그리고는 10점 만점에 6점, 10점 만점에 7점 딱딱 매겨지는 도장을 받는 일이 뭐가 그리 유쾌했을까 말이지요.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을 느끼고 읽기 이전에 외우고 베끼고, 마치 윤동주의 시를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해석하는 것처럼 끔찍하게 지루했습니다. 자연스레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예술에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있겠냐만은 "미술은 못하는 애"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대학 무렵 큐레이터 공주형님의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글 사이사이 삽입된 그림들에서 눈을 떼지 못해 자꾸만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늦추어졌습니다. 미술에 관한 책을 가끔 읽기는 했어도 그림과 대화하는 법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한 것은 바로 이 책이었지요.
학고재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인 공주형님이 들려주는 예술가들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매혹적이었습니다. 그림이 전달하는 수많은 이야기와 나즈막한 위안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조금 더 빨리 그림과 대화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법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사는 낙이 하나쯤 더 늘지 않았을까요.

<마음을 그리는 고흐>(오현미·강시정 지음, 봄날 펴냄)를 읽으면서도 꼭 그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내가 좀더 이르게 그림을 느끼고 읽는 법을 일러주는 사람 혹은 책을 만났다면 미술은 지루하다는 편견도 가지지 않았을 테고, 내 앞에 나타난 수많은 영혼들을 무심히 스치는 일도 없었겠지요.
단순히 수학공식을 많이 외우고 외국어를 능숙하게 말하는 것말고 상대의 감정을 느끼고 그에 반응하고 공감하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그렇게 자기만의 색을 내면서 상대의 색도 보아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요. 그걸 가르쳐 주는 게 예술가들의 작품과 미술이고 말이지요.

PR일을 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에 천착하게 되는데 결국 살아가는 일이란 소통하는 일 아닌가요. 왜 대립하고 갈등하게 될까요. 대립하고 갈등할 수야 있지만 왜 꼭 서로를 폄하하고 무시하고 오해하게 될까요.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나의 이야기만 반복하거나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 헤아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니 그렇겠지요.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기만 해도 서로의 감정을 조금만 더 세심히 헤아린다면 불필요하게 다투는 일도 줄어들겠지요.
잘 사는 건 곧 잘 소통하는 것이고 보면 우리에게는 우리의 색을 보다 잘 표현하고 상대의 색을 존중하며 바라보는 연습이 좀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PR이라는 일의 본질이나 살아가는 일의 본질이나 그닥 다르진 않은 듯한데요.
<마음을 그리는 고흐>는 차분하게 일러줍니다. 고흐가 그려낸 마음의 풍경을 잠시만 들여다 보라고. 그 아우성을 읽어 보라고. 사뭇 바싹 곁에 붙어앉아 그림을 하나하나 읽어주는 듯합니다. 그 말투가 살갑고 다정해서 아이들이 읽기에 참 좋겠습니다.

책과 함께 미술체험활동 워크북이 한 권 딸려왔는데 저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워낙에 이런 창작활동을 좋아하는 1인//^^//). 이를테면 "고흐 아저씨의 <감자 먹는 사람들>"처럼 빛이 거의 없는 어둠 속 풍경을 그려보는 것이지요. 환할 때와 어두울 때 사물의 색깔은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불빛이 닿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등을 살피고는 이를 느낀 대로 표현해 보도록 합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읽는,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 관한 나의 이야기도 이끌어 냅니다. 대화를 하는 법을 일러준달까요.

다만 본 책에서 그림이 나오는 페이지에선 문자는 다음 장으로 미루고 그림만 볼 수 있도록 하면 더 좋겠습니다. 그림에만 집중해서 천천히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여지를 좀더 주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바로 옆에 설명이 딸려나오니 조급한 마음에 눈이 먼저 문자로 흘러가버립니다. 설명을 다음 페이지로 미루었다면 애초에 의도한 효과(작가와 그림의 이야기를 듣는 것)를 좀더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백이 너무 많아진다 싶으면 설명 대신 독자가 느낀 점을 쓸 수 있도록 메모란으로 만들어도 좋겠고요.

다음 번 책 작업하실 때는 이런 방식을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

그리고 하나 더.
고흐라는 작가는 마주할 때마다 버겁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 안의 강렬함과 일렁임을 감당해내기 어렵다 싶습니다. 보는 사람도 이러한데 작가 자신은 그 삶과 욕망과 영혼을 어찌 다 버티고 살았을까요. 그에게 그림이 아니었다면, 말이지요. 그의 그림이 없었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PRSONG의 스토리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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